[일반] 노사모 대표일꾼 선거 / 기호 1번 다문 황의완 /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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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그대에게 노래 한 곡 띄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i1ZtgnvsN0
기호 1번 다문 황의완 /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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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 주식회사 플랜비코리아 대표이사
2014년 ~ 현) 부산영화협동조합 이사장
2008년 (사)부산영화영상산업협회 이사장
2004년 [e-politics] 노사모와 인터넷 정치에 관한 기록 / 가교출판
2003년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
2000년 노사모 참가.
1992년 영화 ‘하얀전쟁’ 연출부
1989년 영화 ‘남부군’ 조감독
1988년 영화창작단 꽃다림 대표 (8mm 16mm 단편영화제작)
1987년 부산대 사범대 미술교육과 졸업

이하 아래의 글은 참조용입니다.
시간 많으신 분들만을 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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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릴 적 꿈은 화가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뎃생을 배웠습니다. 중2때부터 아버지 작업실에서 아버지랑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 조각상들 중 하나가 제 고향 합천 숭산초등학교에 아버님의 유작으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83년 부산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입학했습니다.
1학년 때 UCDC( Untied Collage Dance Club)에서 대학의 낭만을 누렸습니다. 그러다 시위하다 잡혀가는 선배를 보고, 민족지성 연구회라는 운동권 써클에 가입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전공은 플래카드, 칵테일, 꽃꽂이로 바뀌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에 10개가 넘는 플래카드를 제작했고, 중유와 알콜을 적절히 섞어 몰로토프 칵테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 제일 앞에서 꽃꽂이 하며 꽃병으로 교문을 지켰습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미술운동 써클 미술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87년 4학년 때 개헌이란 말만 꺼내도 잡혀갈 때, 부산대 개헌특위장을 맡아 1계급 특진과 현상금까지 붙은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87년 6월 26일 부산시경에 체포되어 대공분실로 끌려갔었습니다. 눈을 가린 채 끌려가 지금도 그곳이 어딘지 모르는 곳에 끌려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629 덕분에 기소도 재판도없이 풀려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의 길 대신에 영화계로 들어갔습니다. 단편영화 <가자통일을 향해>등 1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때가 1988년이었는데, 노변이 국회출마를 한다고 해서 지원활동을 하러 노변의 캠프에 합류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배치된 곳은 당시 광안리에 있던 노변의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노변이 원고지에 출사표를 적는 것을 봤습니다. 그 제목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 > 였습니다.

그리곤 출마할 경쟁자로 허삼수를 달라고 하는 전화통화를 옆에서 들었습니다. 당시 저의 인식수준으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만화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대학 때 학보사 신문의 만화기자를 했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만화를 시킨 분이 문변이었습니다. <재주가 많은 친구이니 한 번 써 보시라> 문변이 노변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원고의 스토리는 캠프에서 만들었고, 그림은 제가 그렸습니다. 그러다 허삼수의 만화를 고우영이 맡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제가 감당할 상황이 아니라 우리도 유명한 만화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악동이 만화를 그리시던 이희재씨를 찾아 갔습니다. 서울 상계동 판자촌이 집이었습니다. 첫마디는 < 내는 정치 만화 안 그린다. 우리 술이나 묵자>

한참 딴 얘기 하다가 <그래 상대는 누구인데?> <허삼수라요> < 잉? 허삼수~~> < 얀마 그 얘길 와 인자하는 겨, 상대가 허삼수라고... 거 노변은 뭐하는 사람이고... 그 씨게 될사람이네... 지금 당장하자 > 그때부터 이희재가 초고 그리고, 제자가 먹물 입히고, 부인께서 지우게질하고, 저는 식자 따 붙이고...해서 만화를 만들었습니다.

노변이 당선되고 저는 다시 충무로 영화계로 갔습니다. 정지영감독의 영화 남부군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에는 배우로 케스팅되어 베트남에 촬영했습니다.

충무로 생활을 접고 다시 부산으로 와서 영화창장단 꽃다림을 만들었습니다. 오 꿈의나라 파업전야 닫힌교문을 열며 등의 영화를 배급했습니다. 노변의 주례로 결혼했고 광고회사를 차렸습니다. 부산광고업계 매출 2위까지 올랐었습니다. 사내에 서버를 두고 웹호스팅 파트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즈음 노무현의 첫 홈페이지 노하우가 1999년 8월 15일 오픈했습니다. 저는 노무현의 홈페이지 노하우의 사이버 보좌관으로 참여했습니다.

2000년 4월 13일 노무현의 낙선은 울분이 소낙비처럼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던 저는 도메인을 등록했고,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제 회사 서버에서 노사모의 홈페이지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사모 접속은 폭주했고, 독립서버로는 감당이 안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노사모 독자 서버를 모금으로 마련했습니다.
제가 만든 노사모의 첫 홈페이지 입니다. 지금도 old.nosamo.org 를 치면 접속이 가능합니다.

광주경선이 저의 노사모 생활의 절정이었습니다. 대선승리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사모의 탄생의 목적은 동서화합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사모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하자 말자로 큰 내홍을 겪었습니다. 그 논쟁 끝에 저는 국민경선 참여 기획단장을 맡았습니다.
대선 승리 후 가장 힘든 것은 < 너 왜 그러고 있는데? 어디 안가나?>하는 주변의 조소어린 말들을 들을 때였습니다. 815행사 참여 초청을 받았지만 차비가 없어 갈 수 없었고, 각종 선거법 관련으로 10년 동안 투표권조차 없이 보냈습니다.

그 당시 노사모 5기쯤 되는 노사모 대표측으로 부터 노사모 태동기에 대한 글을 요청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글을 노사모천일야화로 작성했었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이렇게 뜨네요. https://goo.gl/uxk1qQ
`노사모 태동` 노사모 천일야화
[노사모 태동] 노사모 천일야화 등록일[2005-12-20 오후 1:03:06] 노사모 최초의 온라인팀장을 역임하신 부산 노사모 다문님의 글입니다 노사모 천일야화 황의완(다문 )2005년 12월 11일 노사모의 태동기의 비사를 적어달란 주문을 받았습니다. 6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간 미처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천
cafe.daum.net
노사모집행부를 완전히 떠난 후 , 광고와 영화 전공을 살려 부산경성대 겸임교수로 새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에 노사모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 E-POLITICS > 가교출판에서 2004년에 발간했습니다.
http://www.gsshop.com/prd/prd.gs?prdid=6471406
정치백신 E - POLITICS - 황의완
정치백신 E - POLITICS - 황의완
www.gsshop.com

지금 저의 꿈은 노사모의 마지막 기록자로 남는 것입니다. 2002년에 저의 아이디를 <다문>으로 정하면서 작심한 꿈입니다. 불경에 여시아문(이와 같이 나는 들었네)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부처의 제자 다문<多聞>이 들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 불경입니다. 그처럼 살고 싶어 다문으로 정한 겁니다. 물론 이런 얘길 누구한테 하면 웃기는 놈이란 소릴 들을테니, 그냥 <입 닫고> 사는 <다문>이라고만 얘기했지요.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2448

노사모 외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부산영화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http://bfcoop.kr/ 그리고 플랜비코리아라는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사모에 올인하다 쫄딱 망한 적이 있지만, 5년 동안 돈 버는 일만해서 지금은 한창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무현재단에서 발행한 책 <선택의 순간들>에서 저를 <조용히 사라진 그들>중의 한명으로 소개합니다. https://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65133889&orderClick=LBB&Kc=SETRETAgendasearch
그런데 그때부터 저에게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했고, 그 영화와 함께 전국을 돌며 파도타기를 했었습니다. 노무현과 노사모가 주인공인 영화어서 저는 그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것이 노사모활동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노사모의 대표로 출마하려니, 저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기에 시작한 글인데 너무 길어졌습니다. 대표일꾼으로 당선되면 재단설립 가능성 여부를 중앙위와 각지역 노사모님들을 만나 의논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찬성 70% 반대 30% 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90% 이상이 될 때 까지 설득해 보겠습니다. 제가 설득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저는 어서 빨리 중앙노사모가 안정화 되고, 다시 입 닫고 노사모의 기록자 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사명이고 꿈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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